본문 바로가기
영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속 천사와 아이 (Der Himmel über Berlin, 1987)

by joue 2023. 9. 16.
반응형
 

 우리는 아이를 ‘천사 같다’는 말로 흔히 비유하곤 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를 본 이후, 아이가 천사 같은 것이 아닌, 천사가 마치 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피터 한트케의 <아이의 노래>를 다미엘의 목소리로 삽입하여 시작과 끝을 맺고있다. ‘아이의 성장’과, ‘천사가 인간이 되는 것’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하며 삽입 텍스트 <아이의 노래>가 영화의 주제의식을 어떻게 강화하는지에 대해 감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카메라를 응시하는 주체: 천사와 아이 

 영화는 흑백과 컬러의 색감 대비, 하이 앵글의 시선, 청각적 자극, 등장인물들의 반응 등을 통해 천사와 인간을 대비하여 보여준다. 천사의 시점에서 세상은 흑백이다. 날개가 있는 그들은 인간 세상을 아래로 조망하며, 인간들이 삶의 고난과 절망에 빠진 순간에 함께해 간접적인 도움을 준다. 한편, 세상을 다채로운 색으로 보는 인간들은 시각이라는 감각을 통해서 천사를 볼 수 없다. 천사만이 인간을 볼 수 있으며 천사만이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방적인 소통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인간들 중에서도 천사를 보 느끼는 존재아이가 있다.  

 카메라와 시선을 맞추고 미소를 보이는 주체들은 천사아ㅍ이이다. 천사의 (주로 다미엘과 카시엘의) 시각을 대변하는 카메라를 응시하고, 이에 웃음을 짓는 천사와 아이들은 순수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시작에 나레이션으로 삽입되는 <아이의 노래>의 아이는자신이 아이였다는 것도 모르,억지로 표정을 짓지도 않는순수한 존재로 묘사된다. 더불어 영화 초반, 다미엘은 카시엘에게영원히 살면서 천사로 순수하게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라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는 삽입된 텍스트와 대사를 통하여 아이와 천사의 순수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2. 질문하던 존재: 천사와 아이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어져 나오는 <아이의 노래> 질문들은, 관객들이 어린 시절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기도 할 것이며 질문을 던지는 스스로와 스스로를 둘러싼 세상의 주체성역사’,뿌리 찾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이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듯, 천사 다미엘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순수함을 가진, 영원의 존재인 천사로 살아가는 것과 무게를 느끼고 현재를 느끼며, 지금을 사는 존재인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 인간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것이다. (시간의 개념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셀 수 없는 시간동안 천사의 시각에서 인간을 조망하며 살아왔지만, 그들이 느끼는 사소한 감각의 실체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천사들이 듣는 인간들의 속마음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하지만 천사들은 이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일상적인 삶을 동경한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아파보는, 손때가 묻게 신문을 읽는 등의 일상적인 행위들을 환상이라 말한다. 이 대목에서 관객들은 환상이라 느꼈던 천사의 존재와 일상이 역전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후 영화 초반부의 상당 시간동안 카메라가 담는 인물들의 일상적인 고민, 의식의 흐름 등을 보는 관객들은 나의 일상과 천사가 궁금해하는 것,내가 아이였을 때 궁금해했던 것들과 지금의 나의 일상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한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영화는 <아이의 노래> 통해 아이가 아이였을 때 ~ 했다. 하지만 지금은 ~ 할 뿐이다라는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이야기를 노래한다. 

 천사와 아이가 겹쳐 보이는 순간은 인간이 된 직후의 다미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이 되어 세상을 색으로 인지하고, 붉은 피를 보고 따뜻한 감촉을 느끼며 비릿한 피의 맛을 확인할 수 있게 된 다미엘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색깔에 대해 물어본다.이게 빨간 색인가요? 저것은 무슨 색이죠? 이건요?라고 묻는 장면은 마치 집 밖에 나온 어린 아이가 길거리의 간판을 읽고, 어른에게 이게 뭐에요? 저건 뭐에요?하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3. 아마도 동일한 존재인: 천사와 아이 – 인간과 어른 

 인간이 된 다미엘은 천사였을 때 느낄 수 없었던 감각을 느낀다. 다미엘보다 먼저 인간이 된 천사들을 대변하는 형사 피터 포크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영화 밖의 실제 세상에서도 그는 피터 포크 그 자신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그가 천사였던 인간임이 전달되는 커피 트럭 앞의 장면에서,판타지로 여겨졌던 영화의 서사가 실 세계와 혼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실세계와 영화 속 세계의 경계를 피터 포크가 허물 듯, 다미엘과 마리온은 천사들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허문다.  

 서커스의 공중 곡예사인 마리온은 첫 등장부터 날개를 달고 천사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아마도 천사의 은유였을 그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는데라 말하며 스스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 모습에서 필자는 마리온은 앞서 정리한 아이와 천사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는 외면적으로 이미 성장한 어른임에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가 지닌 실직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고단함을 공유한 천사 다미엘은 인간이 되고자 한다.이 세상에 뛰어들겠어. 시간의 강 죽음의 강으로 뛰어들겠어. 위에서 보지 않고 눈 높이에서 볼거야.라 말하는 다미엘의 말처럼 카메라의 시선 또한 아이레벨로 움직인다. 하이앵글로 인간 세상을 조망하던 천사 다미엘의 시선이 점차 아래로 내려오며 마리온과 눈을 맞춘다.  

 

 천사 다미엘을 느끼던마리온은 인간 다미엘과 만나며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성장을 경험한다. 다미엘도 마찬가지이다. 천사에서 인간이 된 다미엘은 세상을 감각하고 마리온과 함께하며 무엇인가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아이의 노래>의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해당 텍스트의 문장 구조는 지금은 ~ 할 뿐이다라는 반전의 구조에서 지금도 그렇다라는 호응의 의미를 담게 된다. 아이였을 때와 어른인 지금이 경험하는 사실은 동일하다. 천사와 인간이 바라보는 세상은 동일하다. 감각할 수 있는 시각과 입장이 다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관객들보다 먼저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리온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당신 차례에요.’ ‘당신 손에 달렸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