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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 음식과 계절, 그리고 기억 (리틀 포레스트, 2018)

by joue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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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소설로 손꼽히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통해 주인공의 추억과 기억을 불러온다. 문학 작품 속의 음식이 과거의 기억을 환기하는 매개체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후각과 미각을 비롯한 오감을 통해 과거와 연결되는 체험을 수도 없이 경험한다. 음식 그 자체의 향과 맛, 색감과 식감 뿐만 아니라 요리를 하는 과정까지 포함된다면, 그것이 불러올 과거의 기억은 분명히 구체적이고 생생할 것이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의 요리와 음식도 그러하다. 특히, 농촌에서 직접 가꾸고 재배한 식재료와 제철 요리를 사계절의 흐름에 맞게 제시한다. 그렇게 주인공 혜원은 농사와 요리, 그리고 음식을 통해 과거 엄마와의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영화 속 미성리에서 재배하는 작물이 계절에 따라 바뀌며 혜원의 요리도 변화하듯, 미성리로 돌아온 혜원의 모습도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해당 감상문에서는 혜원의 변화와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음식의 기억과 자연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사계절의 변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오프닝 시퀀스는 봄이라는 시간적 배경에 혜원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따뜻하고 푸르른 봄의 이미지와 내레이션을 통해 요약적으로 제시되는 혜원이 지난 겨울 미성리에 돌아왔다는 사실은 바로 이어지는 겨울 숲의 혜원의 모습과 연결되며 쓸쓸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강조한다.  

 영화 속 사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것은 아주 쉽다. 요리하는 혜원의 내레이션으로 드러나는 것 뿐만 아니라 프레임 우측 하단에 삽입된 텍스트로도, 그와 함께 보여지는 자연 풍경으로도 알아볼 수 있다. 혜원이 만드는 요리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다. 미성리에서는 마트에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도 한참을 나가야 하고, 직접 재배한 작물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계절의 표현에 있어서 계절 별 가장 맛있는, 혹은 잘 익어가는 식재료에 대해 설명하는 혜원의 내레이션 뿐만 아니라 롱샷으로 담는 자연의 풍광이 인상적이었다. 자연 속의 혜원의 모습을 아주 작게 묘사하고 있다. 해당 장면들은 인간과 자연의 대비나, 자연의 위압감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자연 속에 스며든 인간 혜원의 모습을 조화롭게 그리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도시에서의 음식

 영화 초반, 혜원의 내래이션과 함께 요약적으로 제시되는 도시에서의 삶에는 인스턴트 음식/편의점 음식이 상징하는 편의성과 차가움이 그대로 묻어 난다. 상한 편의점 도시락을 먹다가 버리기도 하고, 서서 삼각김밥을 허겁지겁 먹는 혜원의 모습은, 오랜 시간 요리한 따뜻한 음식을 상에 차려 놓고 먹는 미성리에서의 혜원과 대비된다. 냉장고 속의 썩어버린 식재료도 농촌의 생기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미디엄 앵글을 통해 프레임 속에 담긴 도시에서의 혜원 무표정한 얼굴이다. 그러한 혜원이 밥을 먹고 있는 편의점과 자취방은 카메라가 설 공간조차 벅차 보일 정도로 좁다. 폐쇄성을 강조하는 카메라는 공간의 혼잡함과 어지러움을 전단지, 정리되지 않은 방 등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혜원의 모습을 화면에 꽉 차게 담는다.

 

농촌에서의 음식

 겨울에 미성리에 돌아온 혜원은 밭에서 언 배추의 밑동으로 배춧국을 끓이고,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도시에서 느꼈던, 채워지지 않았던 공복감음식을 통해 일부 해소되는 순간이다. 신체적인 공복감은 해소되었지만, 혜원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심리적 공복감은 해소되지 못했다. 도망치듯 떠나온 미성리에서 잠시 있으려 하였지만 그렇게 계절은 한 바퀴를 돌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농작물은 단단해지고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말랑해지기도 한다. (곶감이 벌써 맛있어졌다는 것은, 겨울이 깊어 졌다는 뜻이다) 작물이 성장하고, 때로는 태풍에 쓰러지거나 떨어지기도 하는 것은 혜원의 심리적 변화를 은유적으로 상징하기도 한다. 농작물을 재배하던 재하 가끔은 직설적인 말로 혜원을 일깨워줄 때마다, 관객들은 혜원이 마치 작물과 같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농사를 지으며, 태풍에 쓰러진 벼를 묶으며, 양파를 아주심기하며 혜원은 점차 단단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찾게 된다. 

 혜원의 심리 변화를 농사와 농작물이 은유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음식이 환기하는 과거 엄마와의 기억이다. 엄마가 갑자기 떠난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극 초반의 혜원은 혼자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이 불러오는 엄마와의 기억, 엄마와의 대화를 떠올려보며 점차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작은 숲이 자연과 요리,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그 숲을 떠난 엄마를 이해한다. 이 이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혜원은 숲을 거닐며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삶의 지향점을 수립하고자 하는, 도망친 삶이 아닌 찾아가는 삶을 살고자 하는 혜원이 영화 초반의 모습에 비해 성장했음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마무리하며

 이러한 내용과 장면의 분석을 차치하더라도,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영화를 감상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평안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를 감상하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파악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배움이 있겠지만 영화를 감상하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작물들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 롱샷으로 조망하는 논의 벼가 익어가는 모습, 그 안의 작은 사람들의 모습과 땀 흘려 얻은 결실로 음식 만들어 먹는 모습과 소리는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의 감각을 만족시킨다. 영화의 또 다른 의미를,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감상 그 자체가 주는 치유에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도, 감독의 세밀한 의도에 따른 연출이 만들어 냈을 그 치유 느끼는 관객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자신만의 작은 숲을 찾기 위한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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